RETHINK REWEAR RECYCLE

쓰레기를 사지 않을 소비자의 권리,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소비자의 의무

홍수열

패스트 패션은 현대사회 쓰레기를 양산하는 소비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패스트 패션 산업에서는 연간 의류 신제품이 출시되는 횟수가 50번이라고 한다. 1~2주 단위로 신제품이 출시된다. 패스트 패션 산업이 등장하기 전에 연간 2회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빨라졌다. 신제품이 출시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유행의 속도가 빨라져서 소비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불필요한 낭비가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패스트 패션이 득세한 결과 연간 1천억 벌의 옷이 소비되고, 3백억 벌이 쓰레기로 버려진다. 2015년 기준 섬유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약 7억 톤으로 우리나라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과 맞먹는다.

5천만 톤의 의류 쓰레기가 매년 배출되는데 이 중 단 1%만이 섬유로 다시 재활용된다. 옷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매년 50만 톤의 섬유조각이 미세플라스틱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마치 일회용처럼 우리를 거쳐서 나가는 의류 쓰레기로 인해 지구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우리는 의류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입지 않는 옷은 옷장에 방치되거나, 의류 수거함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의류 수거함으로 배출하면 어딘가에서 재사용이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재사용이 될 테니 쓰레기를 버렸다는 죄책감은 크게 들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의류수거함으로 배출된 옷은 실상 대부분 저개발국가로 수출되고, 해당 국가에서 절반만 재사용되고 나머지는 쓰레기로 사실상 투기된다. 재사용되는 옷들도 얼마 후 쓰레기로 해당 국가에서 버려진다. 결국, 쓰레기로 버려진다. 우리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할 의류쓰레기를 재사용 명목으로 쓰레기 처리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저개발국가로 떠넘기고 있다. 재사용 혹은 재활용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버린 사람이 끝까지 책임지는 ‘책임있는 재활용(responsible recycling)'이 중요하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가 쓰레기로 버린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버렸다고 해서 쓰레기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쓰레기가 넘쳐나는 시대! 기후 위기와 미세플라스틱 문제로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 생명체의 지속가능성 위기에 직면한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거부하고 저항해야 한다.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마케팅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친환경 재질이라는 말에 혹해서도 안 된다. 지구를 살리는 친환경 재질이란 없다. 유기농 목화로 만든 면섬유라고 해서 환경에 전혀 영향이 없겠는가? 양이 많아지면 문제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착한 소비란 없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주체적 소비를 통해 불필요한 낭비는 최소화해야 한다. 쓰레기를 사지 않을 소비자의 권리는 소비자의 유행에 대한 거부를 통해서 쟁취할 수 있다.

우리 소비의 결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쓰레기로 버리기 전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한 물건일 수 있다. 쉽게 버려서는 안 된다. 물건의 가치를 지켜주고 쓰레기로 버리지 않는 것은 소비자의 의무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의무이기도 하고, 인간의 인해 고통받는 현시대의 생물들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툰베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실천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실천을 이끌어 가는 건강한 희망도 필요하다. 당장의 실천을 이끌어 내는 것은 분노일 수 있지만, 우리의 실천이 오래 지속하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받쳐줘야 한다.

사진

홍수열 박사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환경대학원에서 폐기물을 공부한 후 11년 동안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서 소각장 매립지·감영성 폐기물·다이옥신·편의점쓰레기 등의 문제를 연구하고, 재활용 캠페인 등 쓰레기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저서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슬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