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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옷 안 사기가 주는 ‘사회적 티핑 포인트’

이근영

지난 8월9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 제1실무그룹 보고서(과학적 근거)에는 “인간의 영향으로 대기와 해양, 육지가 온난화한 것은 자명하다(unequivocal)”고 돼 있다. 8년 전 2013년 제5차 평가보고서의 “기후시스템에 대한 인간의 영향은 확실하다(clear)”에서 단어 하나가 바뀌었다. 자명하다(unequivocal)와 확실하다(clear)라는 단어의 의미 차이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 뜻풀이를 찾아보아도 두 단어의 무게를 알 수는 없다.

IPCC는 기존에 동료평가를 통해 검증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들, 대부분 과학저널을 통해 공개된 논문들을 평가해 과학적 결론을 내리는 조직이다. 6차 보고서에는 “자연이 아닌 인간 유래 기후변화가 폭염·호우·가뭄·열대저기압 등 세계의 많은 기상·기후 극한
현상에 이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는 평가가 실려 있다. 여기에는 ‘사실상 확실하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사실상 확실하다’의 무게는 또 얼마일까? 정답은 보고서 각주에 들어 있다.

IPCC는 평가 결과 99∼100% 가능성이 있으면 ‘사실상 확실’(virtually certain), 95∼100%면 ‘대단히 가능성 높음’(extremely likely), 90∼100%면 ‘매우 가능성 높음’(very likely) 식으로 단서를 단다. 제5차 보고서에는 “경제 및 인구 성장이 주 원인이 되어 나타난 산업화 시대 이전부터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증가해왔고, 현재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중략) 이는 20세기 중반 이후 관측된 온난화의 주 원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돼 있다. 5차 보고서에서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인간 유래의 기후변화가 95~100% 정도 확실하다(대단히 가능성 높음)고 평가했던 데 비해 6차 보고서에서는 그 확실성이 99~100%(사실상 확실)로 더 높아졌다고 평가한 것이다.

여전히 확률 숫자라서 직관적인 이해에는 부족하다. 6차 보고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2011~2020년 지구 평균온도가 1.09도까지 올랐다고 밝혔다. 5차 보고서의 0.78도와 차이가 0.31도다. 약 10년 사이 0.3도 이상 상승한 것이다. 6차 보고서는 또 현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21~2040년에 1.5도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는 표현도 썼다. 2018년 IPCC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는 그 시점을 2030∼2052년으로 전망했다. 10년 가량 앞당겨졌다.

99~100% 확률, 0.31도 상승, 1.5도 초과 모두 숫자로 표시돼 있지만 우리의 감각은 수치화된 것이 아니어서, 곧 우리는 로봇이 아니어서 단박에 깨닫기 어렵다. 최근 미국 연구팀이 보고한 연어의 비극은 간접 체험을 경험하게 한다.

한 미국 환경보호단체는 최근 태평양에서 컬럼비아강으로 거슬러 올라온 연어들이 온몸에 상처 투성인 채로 힘겹게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수중촬영해 공개했다. 컬럼비아강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발원해 미국 워싱턴주 남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연어들은 불에 덴 듯 몸이 헐어 흉측한 모양을 한 채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는커녕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이 단체의 한 회원은 “불타는 빌딩에서 탈출하기 위해 연어들이 원래 다니던 길을 바꿔 다른 지류로 방향을 급선회했다”고 표현했다.

연구팀의 보고를 보면, 촬영한 날 강의 수온은 21도가 넘었다. 당시는 밴쿠버에 역대급 폭염이 닥친 시기다. 연어가 이 온도에 장시간 노출되면 치명적이라 한다. 미국 수질오염방지법은 컬럼비아강의 수온이 20도를 넘으면 안 된다고 규정해놓았다. 20도와 21도, 단 1도의 차이로 연어들은 삶의 무대를 잃고 목숨마저 빼앗겼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도의 체온 변화를 겪고 있기에 1도, 1.5도 온도 상승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는 없다. 기후위기 대응이 우리의 이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필자 역시 기후변화를 머리로 이해하고 있다. 20여년 과학담당 기자 생활 중에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처음 쓴 건 2005년, 제주 연산호 살리기 기사를 쓰면서였다. 세계 산호초의 70%가 파괴됐다고 보고된 제10차 기후변화협약 회의를 언급하면서 기후변화라는 말을 썼지만 환경보호 캠페인 용어 정도로 이해하는 ‘일천한 인식’에 그쳤다. 기후변화를 오롯이 ‘만난’ 건 우연이었다. 2007년 해외취재를 간 오스트레일리아 호텔 방에서 무심코 켠 텔레비전 화면에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 강연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기후변화와 조우한 것은 십년도 더 흐른 뒤였다.

2018년부터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기획란을 만들면서 기후변화, 기후위기 관련 기사를 작성하면서 깊은 ‘이해’를 하게 됐다. 우연의 일치로 그 즈음 국내 언론들도 기후변화에 관한 관심들이 높아졌다. 필자가 한 언론의 지면에 실린 내용을 PDF로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2009년부터 2021년까지 기후변화와 기후위기 두 단어를 중앙일간지 12개, 경제지 11개, 전문지 2개에서 검색해보니,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정상회의(COP15)가 열린 2009년 연간 9천건에 이르렀을 뿐 파리기후협정이 맺어진 2015년이나 인천 송도에서 IPCC 총회(1.5도 특별보고서 발표)가 열린 2018년에도 3000~6000여건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2019년 후반기부터 급격히 늘어나 5천여건, 2020년에는 9천여건으로 급증하고 올해는 4월까지 5천건에 이르러, 연간 1만5천~2만건에 이르지 않을까 추정된다.

아마도 2018년 세계적 폭염과 우리나라의 역대급 폭염, 2018년 8월 금요일 학교 파업을 시작한 그레타 툰베리 현상이 170여개국으로 번진 것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필자도 기사 건수 급증에 미미한 기여는 한 것 같다. 하지만 기사를 쓸수록 어려운 것은 기후위기를 직관으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기자가 지녀야 할 소양 중 하나가 객관화라지만, 이성만으로 기사를 쓴다는 건, 세상이 과연 변할까라는 자괴감을 종종 갖게 만든다. 자동차를 되도록 운행하지 않고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이런 자괴감이 쉽게 가시지는 않는다.

최근 툰베리 덕에 그나마 자괴감을 덜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얻게 됐다. 툰베리가 올해 1월 만 18살 성인이 돼 처음 펍에 갔다는 트윗을 올리자 언론들이 주목했다. 하지만 필자는 툰베리가 ‘더이상 새 옷을 사지 않겠다’고 밝힌 데 더 눈길이 갔다. 18살 성인이 된 툰베리가 왜 옷을 사지 않을까. 전에 의류산업의 패스트패션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어, 담박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영국 연구팀의 논문은 의류산업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전체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고 밝히고 있었다. 세계 1인당
섬유 생산량이 1975년에서 2018년 사이 5.9kg에서 13kg으로 증가한 데다 2020년 4월 기준 의류 브랜드는 20년 전에 비해
2배로 늘었다. 패스트패션이 유행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의류산업이 사용하는 물의 양은 연간 1조5000억ℓ에 이르고, 해양의 1차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35% 이상이 의류산업에서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법정 스님의 일화는 새 옷 안 사기의 ‘온당함’을 받쳐준다. 어떤 스님이 글을 즐겨 쓰는 법정 스님한테 끝이 날카로운 만년필을 드리자, 맘에 든 스님이 유럽 여행길에 똑같은 만년필을 하나 더 샀다. 그러자 만년필이 하나였을 때 느꼈던 살뜰함이 사라지고 말았다 한다. 스님은 얼른 만년필 하나를 다른 스님한테 건넸고, 만년필의 소중함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작은 몸짓이 과연 사회 흐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의문보다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과 2016년 촛불혁명 경험이 주는 ‘사회적 티핑 포인트’ 가능성의 희망이 좀더 자명해지길 고대해본다.

사진

이근영 기자

한겨레 과학전문 선임기자

한겨레 창간 때 입사하여 2000년부터 과학과 기상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다. 대한민국 과학기자상(2018), 대한민국 과학문화상(2006) 등을 수상한 바 있다.

- 저서 <생활속과학 과학속생활>,<미래와 과학>, <과학과 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