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hand september

기후위기 시대 ‘적응‘하고 있나요?

대기과학자 조천호

위험이 없는 세상은 없다. 인류 역사에서 위험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그래도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회복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는 기후위기에서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 경제와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후회복력개발(Climate Resilient Development, CRD)’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온실가스 ‘저감’과 기후변화의 부정적인 결과를 줄이는 ‘적응’과 함께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를 통합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유엔에서는 SDGs를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다Leave No one Behind’라는 하나의 슬로건으로 만들었다. 즉, 기후위기 대응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더 큰 세상이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더 크고, 더 많이, 더 빠르고, 더 격렬한 것들로 넘쳐나는 세상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사고, 또 산다. 소비가 늘어났다고 해서 우리는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이전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운전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데도 삶은 더 버겁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과잉 소비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 삶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삶이 위험해진다.

인구 80억 명 중 15억 명은 비만에 시달리고 10억 명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생산한 식량의 3분의 1은 쓰레기로 버려진다.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생필품을 골고루 나눈다면 80억 명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결핍은 필요한 만큼 생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눌 줄 모르는 인간 욕망으로 일어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중될수록 심화되는 지구 온난화 영향을 보여주는 그래프 ⓒ IPCC

IPCC 6차 평가보고서에서는 지금 보다 더 적은 에너지와 자원으로도 "괜찮은 삶(well-being)”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욕망에 마냥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 삶은 과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채울 수 있다.
소박한 것으로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하게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다. 더 큰 세상이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만족(enough)이 더 많음(more)를 대체해야 한다. 자연과 함께,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즉, 기후위기 대응은 소비와 물질에 대한 갈망을 줄이고 공감, 공유, 협력, 그리고 함께하는 행복과 같은 공공 가치를 키우는 것이다.

나의 안전은 타인의 안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덕을 보는 사람과 그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80퍼센트는 우리나라가 포함된 주요 20개국인 G20이 배출하지만, 전체 기후 피해의 약 75퍼센트는
가난한 나라에서 발생한다. 즉, 선진국이 기후위기를 대부분 일으켰지만, 정작 손실과 피해는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덜한
가난한 나라에서 일어난다.

기후위기는 국가 안에서도 소득 수준이 낮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거나 거주 환경이 불량한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우리나라에서 극한 날씨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더 가혹하게 공격한다. 홍수가 발생하면 저지대와 비탈면에서 사는 사람이
그 피해를 볼 가능성이 더 크고, 폭염이 일어나면 야외 노동자와 좁은 쪽방에 사는 가난한 노인이 더 고통을 받는다.

더 뜨거운 지구는 더 불안정한 세상이다. 기후위기는 물과 식량 부족을 일으키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을 늘어나게 하고,
이에 따라 기후 난민이 발생한다. 우리가 기후 대응을 미룰수록 환경 파괴, 사회적 격변, 경제적 침체, 정치적 혼란은 더 커진다. 위험의 사회화를 넘어 위험의 지구화가 진행된다. 기후위기는 우리만 잘 대응한다고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지구상에 함께 사는 모두가 안전해야 한다. 즉, 나의 안전은 타인의 안전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언제 어디서 누가 온실가스를 배출했는지에 상관없이 그 피해가 전혀 다른 계층, 지역, 세대에게 닥칠 수 있다. 소수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모두의 장기적 이익이 침해당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서 일어나기에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앞으로 10년이 그 뒤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한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일으켰으므로 우리가 바꿀 수 있다. 기후위기를 늦추거나 멈추거나 되돌릴 시간은 여전히 있다. 그렇다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IPCC 6차 평가 보고서에서는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그 후 수천 년 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공정과 정의에 기반한 통합적이고 포용적인 체계로 전환하는 기후회복력개발을 더 이상 지체한다면, 모두가 지속할 기회의 창이 빠르게 닫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후 대응을 기다릴 수 없다. 기후위기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조천호

대기과학자

대기과학자. 30년간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일했으며 원장으로 퇴임했다.
기후변화 과학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공부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 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를 다룬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썼다.

참여 소감 우리가 만들고 있는 세상은 자원과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온실가스,
오염먼지와 쓰레기를 쌓아 기후위기와 환경위기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는 전 세계 인구를 부양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으로 인한 소수의 과잉된 욕망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더 커지는 세상이 아니라 더 좋아지는 세상을 향한 옥스팜의 발걸음에 저의 발걸음을 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