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hand september

'새 옷'보다 당신을 더 근사하게 표현하는 법

KBS PD 구민정

3년 전에 공효진 배우와 환경 예능 <오늘부터 무해하게>를 찍으며 ‘패션 업사이클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공효진 배우는 패션계의 아이콘으로 통하지만, 일찍이 패션이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을 깨닫고 옷이나 가방을 리폼하여 재판매하는 업사이클링 편집샵을 운영했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중고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왕이면 신축 아파트, 차도 중고차보단 새 차를 원하는 시대에 매일 입는 옷이라고 다를까. 환경적인 가치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세월의 멋스러움을 입고 오히려 더 멋진 디자인으로 재탄생해도 빈티지보다 새 옷이 좋다는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

1,000억 벌 중 73%가 버려지는 ‘옷’

매년 전 세계에서 1,000억벌의 새 옷이 생산되고 있고, 그 중 73%는 팔리지 않고 소각되거나 매립된다고 한다. 패스트 패션 산업 자체도 문제이지만, 27%의 판매라도 남는 게 있으니 새 옷을 찍어내는 게 아닐까. 27%의 옷을 구매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소비자인 우리다. 결국 소비자인 우리가 바뀌어야 기업도 바뀐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여전히 이런 이야기는 불편하다. 왜냐면 일단 ‘내가 내 돈으로 사고 싶은 옷 사는 건데, 무슨 상관이람?’이라는 반발심이 들 수 있다. 그리고 패션이 누군가의 첫인상과 취향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인만큼, 패션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선택’의 영역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옷을 찍고 버리는 기업에 대한 정책적인 규제가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모두 다 맞는 이야기다. 우리에겐 내가 사고픈 물건을 구매할 자유가 있고, 유행하는 옷을 입고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소비자보다는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 방법을 찾는 게 가장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일 수도 있다.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기까지

우리는 전 지구적 관점에서 우리 행동의 결과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체 탄소배출량의 10%에 해당하는 패션 산업이 지속되는 동안, 지구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끓어올랐다. 지구가 끓어오르니 전 세계적인 재난과 재해가 빈번해졌다. 인도, 파키스탄은 물론 유럽의 여름이 50도에 육박하는 건 예삿일이 되었고, 그로 인해 전 세계의 강이 메마르고 산불은 더 강하고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었다. 남극(세종과학기지)의 연평균 기온이 영상에 다다랐고, 빙하는 매년 최대 면적으로 녹아 내리고 있다. 바닷물이 뜨거워지며 해수면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남태평양에 있는 14개의 도서국들은 모두 침몰 위기에 처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도네시아는 수도를 이전하고 있고, 태국의 방콕 또한 침수 위기로 인한 수도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와 국가가 사라진다는 건 결국 누군가는 기후 위기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작년에 KBS에서 방영한 <지구 위 블랙박스>를 촬영하며 본 가장 충격적인 기후 재해 현장은 다름 아닌 우리 나라의 동해안이었다. 휴가철 재밌게 놀았던 동해안의 기억과는 달리 동해의 모든 모래 사장이 가파르게 깎여 있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너울성 파도가 커지면서 지난 5년간 동해안에서만 축구장 70개 크기의 모래 사장이 사라졌다고 한다. 모래사장이 유실되며 그 위에 지었던 자전거 도로와 집들이 그대로 무너졌다. 동해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처참했고, 처참한 현실 위에서 다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얼굴은 절망적이었다.

내가 새 옷을 사고 버릴 때마다 누군가는 집을 잃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누가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행동이 지구상에 있는 누군가에게 미치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생각과 행동의 간극을 좁히는 것.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새로운 상상력을 동원해 그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분들을 보면 늘 존경스런 마음이 든다.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지만, ‘덜 불편하게’ 이 이야기를 건네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지 보이니까. 부디 이런 노력이 더 많은 분들에게 가 닿길 바란다. ‘새 옷’보다 지구와 생명체를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이 훨씬 더 멋지고 근사해 보인다.

사진

구민정

KBS PD

자연과 캠핑을 좋아해 자연스레 기후변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KBS 환경 예능 <오늘부터 무해하게>와 <지구 위 블랙박스>를 연출했다. 환경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PD들과 의기투합해 『카메라로 지구를 구하는 방법』을 썼다. 기후위기 문제를 사람들에게 불편하지 않게,
재밌게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한다.

참여 소감 기후위기는 제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제 중 하나입니다. 이번 옥스팜
세컨핸드 셉템버 캠페인의 칼럼에 참여하면서, 저 또한 마음을 다시금
다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상상력을 동원해 기후위기 문제를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옥스팜과 세컨핸드 셉템버 캠페인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