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hand september

두 몸 이상을 거친

시인 이훤

누구나 옷을 입고 다니지만 모두가 옷에 대해 떠들길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아무 자리에서나 떠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친구 킴을 만나면 참을 수 없게 된다. 킴은 내게 말한다.

“나… 이거 너무 하고 싶었어!!!”

검소함과 미니멀리즘이 높은 윤리로 통용되는 시대에, 사실 쇼핑을 너무 좋아해 버린 우리는 오소리처럼 속닥거리며 은밀히 쇼핑을 다닌다. 우리는 옷에 대해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많은 옷을 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럴수록 우리의 수다는 첨예해진다.

주말엔 킴과 함께 세컨핸드숍 네 군데를 둘러봤다. 요즘은 거의 세컨핸드로만 옷을 산다. 새 것이나 다름없는 양질의 옷을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건질 수 있다. 가게를 빠져나와 다음 가게로 향하는 동안에도 대화는 끊이지 않는다.

“그 옷은 어깨라인까지 박시하면 더 예뻤을 텐데 품이 좀 작았어.”
“홈웨어라 자주 입을 텐데. 린넨이라 막 걸칠 수 있고. 부드럽고.”
“맞어... 내일까지 고민해볼래.”

누군가에게 옷은, 그러니까 패션은, 구매로 이어질 때의 기쁨만큼이나 세세하게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데서 증폭된다. 왜 좋고 또 아쉬운지를 말하는 동안 그 선택이 타당한지를 알게 된다.

킴은 계속해서 린넨 가운에 대해 떠들고 있다. 나는 그런 킴의 목소리를 듣는다. 좋아하는 인간이 왜 특정 물건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 라펠이 작다는 이유로, 시보리가 단단하다는 이유로, 예상치 못한 데 끈이 달렸다는 이유로 – 묘하게 격앙된 채 이야기하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너무 신이 난다. 비슷한 구석을 알게 되어 즐겁고 취향이 크고 작게 갈리는 것도 재밌다.

산 옷뿐 아니라 사지 않은 옷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야기한다.

“네가 그 옷 안 살 줄 알았어. 왜냐하면 사실상 우비잖아. 근데 너무 화려해.
지금처럼 완벽하게 미니멀한 착장이 아니면 걸치기 어렵지. 자주 입진 못할 거야.”

“내 말이, 내 말이.”

“게다가 소재감이 꽤 두툼해서 막상 입으면 땀이 나. 땀 나면 옷 안이 한증막처럼 변하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그걸 닦으면서 후회하겠지. 두 번 입고 안 입을 거야.”

“어떻게 내 맘을 속속들이 알어.”

세컨핸드숍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신중하게 물건을 선별한다. 구매에 필요한 재화뿐 아니라 옷을 들일 공간 또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오래 입을 수 있는 클래식한 아이템 위주로 고른다. 디테일 많은 몇 벌을 큰 맘 먹고 샀다가 옷장에만 묵히면서 언제부턴가 그런 소비를 참는다. 입어온 것과 입고 있는 옷들 사이에서 궤를 같이 하는 옷을 사는 게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선택이라는 결론. 그러자 자연스럽게 악센트가 되는 아이템도 더 정확하게 알아보게 됐다.

킴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옷장을 정리한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입는 빈도와 요즘 내 스타일이 어디로 향하는지 등이 이내 파악된다. 옷장을 운용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지금 나에게 어울리는 걸 더욱 잘 발견한다. 이제는 세컨핸드숍에서 쇼핑하는 선택이 미적인 관점에서도 수동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외려 너무 많이 쏟아지는 신상 속에서 무엇을 취할지 더욱 능동적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유행이 한참 지난 옷부터 트렌드와 가까운 옷들까지 한 숍에서 살피며 자연스럽게 패션보다는 스타일을 쫓게 되었다. 패셔너블해지는 것만큼이나 스타일리시해지는 건 시간과 정성이 든다. 투박해도 스타일을 가지고 싶다.

내 삶에 누군가를 들이는 일도 그와 닮았다. 새 관계를 쌓는 것보다 이미 나의 반경에 있는 당신들을 아끼고 싶다. 나를 알아주는 고마운 이들 사이에서 낡아가고 싶다. 우리의 대화는 거듭 아카이빙되고 그 우정은 조금 더 희귀해진다.

사진

이훤

시인

시인 겸 사진가. 텍스트와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든다. 새 언어를 만드는 일과 이미 낡은 단어로 허름하지 않은 언어를 짓는 일에 관심이 많다. 여러 형태의 연결과 단절에 대해 고민해왔다. 시카고예술대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북미,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여러 차례 사진전에 참여했다. 『양눈잡이』,
『우린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아무튼, 당근마켓』 등을 쓰고 찍었다. 정릉에서 사진 스튜디오 ‘작업실 두 눈’을 운영 중이다.

참여 소감 좋은 걸 오래 쓰며, 몸과 집이 딛는 이곳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돼 기쁩니다. 캠페인이 아니었어도 이롭고 좋아서 먼저 하게 되는 일들이 있지요.
세컨핸드가 제겐 그렇습니다. 구름과 린넨, 볕들과 우비와 잘 조화하며 낡아가요 우리.